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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인사이트] 채용이 끝이 아니다

9월 29일
4분 분량

※ 핀휠/아트오브 이민복 이사가 들려주는 HR 인사이트입니다.



지난 HR 인사이트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위해 기존 직무의 빈자리에 사람을 맞추기보다, 장애인 근로자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중심으로 직무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에 맞는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기업이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는 것뿐 아니라 예술인이나 체육인 채용처럼 이미 현장에서 검증된 장애인 근무 형태를 도입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그렇다면 장애인 근로자에게 맞는 일자리를 만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잘할 수 있는 일을 맡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채용 이후 그 사람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역시 중요합니다.


얼마 전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다가 ‘자기효능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장애인에 관한 방송은 아니었지만 듣다 보니 장애인 고용 현장과도 맞닿아 있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란 쉽게 말해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자기효능감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소로 성취 경험, 다른 사람의 성공을 통한 대리 경험, 주변의 격려와 지지, 그리고 긴장이나 스트레스와 같은 정서적·신체적 상태를 이야기했습니다.

장애인 근로자가 새로운 일터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도 이런 경험들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1. 긴장과 불안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기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누구나 긴장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배우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고, 낯선 조직문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장애인 근로자의 경우 필요한 지원이나 조정이 충분하지 않은 환경까지 동시에 마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으면 쉽게 ‘나는 이 일을 못 하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는 것은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당연합니다. 긴장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을 낮추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도 할 수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가는 첫 번째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2. 작은 성공(Small Success)을 반복해서 경험하기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는 직접 해내는 경험을 쌓는 것입니다. 대단한 성공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제 하지 못했던 일을 오늘 혼자 해냈거나, 맡은 업무를 끝까지 마쳤거나, 처음 세운 작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사람은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학습합니다. 계속 실패하면 ‘나는 못한다’는 생각이 강화되고, 반대로 작은 성공이 반복되면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려운 일을 맡기기보다 해낼 수 있는 목표부터 시작해 조금씩 난이도를 높여가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성공의 경험을 차곡차곡 저금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핀휠과 아트오브에서도 이런 변화를 종종 목격합니다.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던 분이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아트오브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바다에 전시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어색해하던 분이 관람객의 반응을 듣고, 실제 작품 판매까지 경험을 하며 눈빛이, 걸음걸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자신감이 생긴 작가님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참고글: [장애예술인 전시] 바다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걸어온 1년)


ⓒ갤러리바다
ⓒ갤러리바다

자신의 작업을 먼저 이야기하고, 다음 전시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합니다. 한 번의 전시나 판매가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만든 것도 누군가에게 가치가 있구나’라는 경험은 다음 도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작은 성공이 될 수 있습니다.


3. 나와 비슷한 사람의 성공을 보기

내가 직접 성공하지 않아도 자기효능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저 사람도 했다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다음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갤러리바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갤러리바다 1주년 특별전 '바다라는 이름으로' 를 통해 첫 판매를 경험한 작가와 동료들 ⓒ갤러리바다
갤러리바다 1주년 특별전 '바다라는 이름으로' 를 통해 첫 판매를 경험한 작가와 동료들 ⓒ갤러리바다

처음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시에 내놓는 것을 주저하던 작가가 다른 동료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관람객을 만나고 판매되는 과정을 지켜봅니다. 그러다 다음 전시에서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특히 나와 비슷한 경험과 조건을 가진 사람이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저건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성공 경험은 그 사람 한 명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먼저 해낸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4. 주변의 인정과 지지를 받기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입니다.

제가 약 7년간 근무했던 히즈빈스는 정신장애인 바리스타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히즈빈스에는 ‘다각적 지지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운영 방식이 있습니다. 비장애인 매니저가 장애인 바리스타들과 함께 근무하며 업무와 일상적인 어려움을 살피고, 필요한 지원과 교육을 제공합니다. 단순히 업무를 알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려움이 있는 시기에도 일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지지하는 것입니다.


핀휠에서도 근로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지, 기업과의 소통하는 데 있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살피고, 작은 변화와 성취도 함께 확인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작은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라는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근로자를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 한 사람의 동료로 인정하고 그 사람이 일을 잘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누군가가 나를 믿고 있다는 경험은 내가 나 자신을 믿는 데에도 영향을 줍니다.


채용 이후에 필요한 것

여기까지 읽은 분들은 아마 느끼셨을 겁니다.


자기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이 네 가지는 장애인 근로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신입사원에게도, 새로운 업무를 맡은 팀원에게도, 아직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다만 장애인 고용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몇 명을 채용했는가’와 ‘어떤 직무를 만들었는가’까지 이야기하고 멈춥니다. 하지만 좋은 장애인 고용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질문이 더 필요합니다.


“이 사람이 여기에서 ‘나도 잘할 수 있다’는 경험을 계속 쌓을 수 있을까?”


잘할 수 있는 직무를 만드는 것만큼, 그 일을 잘해낼 수 있다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직무를 잘 설계하는 것이 몸에 맞는 옷을 만드는 일이라면, 그 옷을 입고 자신 있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장애인 고용에서 채용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핀휠·아트오브 이민복 이사

㈜아그막 구루피플스와 쉬플리코리아라는 기업 컨설팅/교육 회사에서 15년을 근무했습니다. 이후 장애인 카페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향기내는사람들 히즈빈스에서 7년을 근무하였습니다. 3곳 다 B2B 비즈니스를 주로 하는 곳이어서 기업을 상대했는데, 만나는 담당자들이 주로 교육, 인사, 채용 부서였습니다. HR을 나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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