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이정숙] "예술로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 비바리퍼블리카 소속
- 하은지
- 2025년 12월 19일
- 6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일 전
*본 인터뷰는 아트오브를 통해 ‘비바리퍼블리카’에 취업한 이정숙 작가님과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이정숙 작가님.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서양 화가 이정숙입니다. 그림을 통해 삶을 사유하고, 예술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계속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Q. 작가님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알게 됐어요. 원래는 성악가가 꿈이셨다면서요.
노래를 정말 좋아했어요. 재능도 있었고요. 그래서 원래 서울대 성악과 진학을 준비했어요. 대회에 나가 상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길을 내 진로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Q. 그런데 어느 날, 진로에 대한 결정적인 질문이 찾아왔다고요.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노래를 정말 좋아하긴 하는데, 다리가 불편한 내가 과연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무거워졌어요. 너무 슬플 것 같더라고요.
마침 그 무렵이 고3이었어요. 수업 시간에 무심코 공책에 낙서를 하듯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그걸 미술 선생님께서 보신 거예요. 조용히 제 그림을 한참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미술을 해야겠다.” 그 선생님이 홍대 출신이셨는데, 말로만 권하신 게 아니라 어머니를 직접 만나 강하게 설득하실 정도였어요. 당시 저는 성악 레슨을 받으며 음대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고요. 그렇게 눈앞에 두 가지 선택지가 놓이게 됐습니다.
Q. 갈등 끝에, 결국 그림을 선택하신 거네요.
네, 맞아요. 결국 음악을 포기하고 그림을 선택했어요. 6개월 준비해서 홍대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Q. 이제 작가님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주 특별한 학위 루트를 밟아오셨더라고요. 미대 시절부터 시작해볼까요.
홍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매사에 열정적이고 긍정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도 늘 한 가지 질문이 마음속에 맴돌았어요. 아주 본질적인 물음이었죠. ‘나는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는가.’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좀처럼 떠나질 않더라고요.
Q. 그 질문이 자연스럽게 '미학'으로까지 이어진 거군요.
맞아요. 그 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고, 자연스럽게 이론과 사유의 영역으로 관심이 옮겨갔어요. 회화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미학과로 석사 진학을 했어요. 그런데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더라고요.
Q. 그래서 갈증은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유학을 결심했어요. 당시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공부하던 친구들과 교류할수록 ‘아, 나는 공부를 더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점점 분명해졌거든요.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의 뿌리, 그리고 왜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한 이유를 짚어보고 싶었어요. 또 하나는 제 성격이었어요. 워낙 독립적인 편이라,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대학교 시절에도 혼자 화실을 운영할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두 가지 이유가 저를 움직였던 것 같아요. 예술의 뿌리부터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갈증, 그리고 내가 정말 혼자 설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보고 싶다는 마음요. 그렇게 해외 박사 유학까지 결정하게 됐습니다.

Q. 독일로 향하게 된 계기도 인상 깊었어요.
마침 지도 교수님이 독일에서 공부를 하신 분이었어요. 그 인연으로 독일의 한 교수님을 소개받았고, 자연스럽게 독일로 가게 됐어요. 그곳에서 예술과 철학을 깊이 접하게 됐습니다.
Q. 하지만 유학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요.
처음엔 모든 것이 새롭고 좋았어요. 하지만 진학 후 1년쯤 지나 아버지 사업이 망했어요. 귀국해야 할 상황이 닥친 거죠. 그때 제가 26살이었어요. 모든 걸 내려놓고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아니면 학업을 마칠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이곳에서 버티기로 결심했어요.
Q. 어려움의 시기를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우선 장학금을 신청했어요. 받기까지 7~8개월이 걸렸는데, 그 시간이 제 스스로를 시험하던 기간이었어요.
경제적으로 정말 힘들었어요. 라면만 먹으며 버텼고, 유복하게 자란 편이어서 더 낯선 경험이었죠. 차가 없어서 계속 걸어 다니다 보니 발에 물집이 생길 만큼 육체적으로도 힘들었고요. 경제적으로 무너지면서 친구들과의 간극도 크게 느꼈어요. 그때 내면의 세계로 아주 깊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Q. 그 극한의 순간에서, 오히려 인생과 예술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다고요.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던 어느 날이었어요. 저 멀리서 햇빛이 비치며 자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이렇게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내 안에는 아직 ‘아름다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자연과의 만남이 마치 계시처럼 느껴졌어요. 극단적으로 힘들 때, 극단적인 해답이 찾아온 셈이었죠. 그때 결심했어요. 공부를 끝까지 마치고,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요.
Q. 그 경험 이후로 삶도 많이 달라졌겠어요.
네,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 두려움 자체가 많이 사라졌고요. 무엇보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스스로 굉장히 단단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다행히 장학금도 나오기 시작했고, 유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버틸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었어요. 지나고 보면, 젊은 시절의 고생은 정말 보석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졸업 후에는 교육자의 길도 오래 걸어오셨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그 무렵 대학교 출강도 함께 나가게 됐고요. 그러다 3천만 원을 빌려, 영어에 능통한 남편과 함께 영어 학원을 시작했어요. 제가 배우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전인 교육’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거든요.
그래서 영어 학원이었지만 예술과 접목시킨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동화책으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영어 스토리북을 만들게 했어요. 뮤지컬 드라마 교육도 병행했고, 실제로 매년 무대에도 올렸고요. 하지만 암기식 교육이 주류인 한국 교육 환경에서 이런 철학을 이해하는 학부모들만 남더라고요. 비즈니스적으로보면, 솔직히 꽝이었죠. (웃음)
Q. 어떻게 보면 시대를 앞서가신 셈이네요.
결국 18년간 운영한 끝에 학원은 문을 닫게 됐어요. 하지만 도전과 의미는 분명히 남았습니다. 결과적으로 40명 정도의 아이들을 미국 주립대까지 보냈고요. 학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들도 창작에 좋은 비료가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은 계속 이어왔어요.
Q. 그러다 작가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서게 된 계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여동생이 암에 걸렸어요. 정말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죠.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음식을 해다 주며 곁을 지켰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점점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때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동생이 떠나기 전에, 제 그림 전시를 꼭 보여주고 싶다고요. 그 마음 하나로 첫 개인전을 준비하기 시작했죠. 그 일이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동생은 전시를 보고 하늘나라로 떠났어요.

Q. 노인복지대학교에서 수업도 하고 계시죠. 꽤 오랜 시간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먼저 나가시면서 시작됐어요. 인문학 강의를 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수업에 나가게 됐죠. 그게 어느덧 10년이 됐어요. 60세부터 시작했으니까요. 수업의 형식은 인문학이지만, 영화와 음악, 미술 작품을 함께 다루며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의미를 나누고 있습니다.
Q. 1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작가님만 아는 보람 같은 거랄까요.
노인 수강생분들이 “선생님, 저 가슴이 뛰어요” “저를 다시 18세로 만들어 주셨어요” 라고 말씀해 주세요. 그럴 때마다 정말 필요한 걸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보람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이번 갤러리바다 겨울 전시에도 함께하셨어요.
네, 맞습니다. 채용뿐 아니라 전시까지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뻤어요.
Q. 〈비껴가며 만나는 듯〉이라는 작품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사유의 흔적을 느끼게 됩니다.
물을 가만히 보면 잠시도 멈춰 있지 않잖아요. 인간도,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조금씩 다 비껴가죠. 그걸 받아들이면 삶이 편안해져요. 우리는 완벽하게 만나길 원하지만, 사실은 부분적으로 비껴가는 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본 작품도 그러한 '사유(思惟)'로부터 탄생했어요.
Q. 마치 수준 높은 철학 수업을 듣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사유에서 비롯된 작품 세계를 하나의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한 단어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굳이 말하자면 ‘힐링’인 것 같아요.

Q. 힐링이라는 단어가 인상적이에요. 최근 아트오브와 함께 진행한 ‘아트테라피’도 작가님이 말씀하신 방향과 잘 맞닿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트레라피를 꼭 해보고 싶었는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요즘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그림이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저 역시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겪으며 그림으로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 했거든요. 앞으로도 예술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Q. 작가님만의 창작 과정도 궁금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리시나요?
저는 먼저 ‘깨달음’을 떠올려요.
Q.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자연에서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든, 혹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든.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떨림이란 게 생기잖아요. 저는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해요. 이게 무엇인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고 스스로에게 묻는 편이에요. 결국 그런 사유의 과정이 제 작업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됩니다.
Q. 그렇게 정리된 생각과 감정을 캔버스 앞으로 가져가시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제 작업은 늘 그 지점에서 시작돼요. ‘깨달음’을 통해 작업의 방향을 구상하고, 스케치를 이어갑니다. 요즘은 아크릴에 한지를 결합한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Q. 올해 아트오브를 통해 비바리퍼블리카에 ‘예술인’으로 채용되셨어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순간이 궁금합니다.
이력서를 넣어두고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다 마침내 채용이 됐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말 그대로 뛸 듯이 기뻤죠. 아트오브 대표님과 통화를 하면서 연신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간절했고, 또 기다리던 순간이었어요.
Q. ‘예술인’으로 채용된 이후,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먼저 체감한 건 경제적인 안정이었어요. 그리고 저를 더 나은 작가로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이 제대로 세팅됐다는 점이었어요.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작품 활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작품의 양도 늘었고, 프로로서의 리듬도 생겼습니다.
Q. 작가님의 삶에 작은 햇살을 더할 수 있어 저희도 기뻤습니다.
살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도움을 받아본 건 처음이에요. 어디서나 마이너스로만 작용했던 경험이 많았는데, '예술인 채용'을 통해 처음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됐어요. 경제적인 기반도, 전시 기회도, 아트테라피 도전도 모두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에요.
Q. 요즘은 미술에 관한 책 집필로 바쁘시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현대 철학과 현대 미술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쉽게 풀어 쓰는 책이에요. 전공자가 아니어도 '아, 그래서 이런 그림이 탄생했구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으면 해요. 지금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Q. 내년 5월에는 갤러리바다에서 개인전도 예정돼 있죠.
아트오브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바다와 함께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제 예술의 수준이 한 단계 더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행복합니다.

Q. 마지막으로 공통 질문 세 가지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작가님이 예술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요?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예술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을요.
Q. 작가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통합적인 형태라고 생각해요. 인간을 쪼개는 게 아니라,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창작은 무엇보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비로소, 다른 사람도 위할 수 있으니까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가는 거예요. 제가 먼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그 결과로 좋은 작품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러다 언젠가 가장 성숙한 상태로, 이 세상 소풍을 마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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