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윤환] "인생은 칠십부터." - 우리기술 소속
- 하은지
- 2025년 12월 3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일 전
*본 인터뷰는 아트오브를 통해 ‘우리기술’에 취업한 김윤환 작가님과 나눈 대화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김윤환 작가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늦깎이 서양화가 김윤환입니다. 홍익대학교 도안과(현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광고업계에서 약 40년간 일해왔습니다.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오랜 꿈이었던 서양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 갑니다. 학창 시절 이후 다시 붓을 잡는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그보다 설렘과 기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수채화와 유화를 넘나들며 저만의 화풍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한 가지 재료에 깊이 집중해 나만의 색깔을 완성하고 싶습니다.

Q.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셨는데, 처음부터 화가를 꿈꾸셨나요?
저는 형제들 가운데 유난히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위로 두 형은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신경이 좋았지만, 저는 몸도 약하고 공부에도 소질이 없었죠. 그런 제게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어머니께서 크레파스 한 상자를 사주셨어요. 소심하고 말이 없던 저에게 딱 맞는 처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얀 도화지 위에 색이 입혀질 때 느꼈던 신기하고 아름다운 감정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나는 색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았죠. 미술 시간만 되면 눈이 반짝였고,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다 보니 자연스레 칭찬도 늘고, 실력과 자신감도 함께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미술로 가득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미대 진학까지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Q. 그런데 작가님의 이력을 보니 ‘도안과’를 나오셨더라구요.
특별히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지금으로 치면 도안과는 시각디자인학과에 해당합니다. 요즘은 인기가 많은 전공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친구들처럼 서양화과로 진학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림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했기에 결국 취업이 유리한 ‘도안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덕분에 대기업에 입사해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지만, 회화과를 포기해야 했던 그 결정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어요. 그래서인지 ‘언젠가 꼭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Q. 그 후 어떤 과정을 거쳐, 다시 그림으로 돌아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여러 일을 거쳤습니다. 20대 후반에는 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일했어요. 열정적으로 가르쳤지만 정교사 자격증이 없었기에 짧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후 산업디자인 분야로 옮겨 제일기획에 입사했고, 효성 스즈끼를 거쳐 백화점에서 근무하며 차장 직책까지 맡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안정적인 커리어였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이건 내 길이 아닌데’ 하는 공허함이 있었어요. 광고업계가 어려워지면서 디자인과 출판 일을 병행했습니다. 인사동에서 도록 제작 회사를 운영하며 매주 수요일마다 직접 영업도 다녔고요.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그림만 그리며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더 커지더군요. 아이들이 다 크고 일이 조금씩 줄어들 무렵,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을 펼쳐 보기로 마음 먹고 다시 붓을 잡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느낍니다. 아, 내가 거쳐 온 모든 길은 결국 그림으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었구나. 제 삶의 모든 것을 그림에 녹여내니까요.

Q. 아트오브를 통해 ‘우리기술’에 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지원하시게 되었나요?
아트오브를 만나기 전에는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제가 가장 좋아하던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3년 전 장애인 판정을 받고부터는 장애예술인으로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장애인 고용이 가능한 기관들을 찾아다녔지만, 대부분 문턱이 높아 번번이 좌절했죠. 그러던 중 우연히 아트오브와 인연이 닿았고, 제 이력을 보시고 ‘우리기술’과 연결해 주셨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Q. 입사 전에는 건물 관리직으로 근무하셨다고요. 지금은 '예술인 근로자'로 기업과 함께하고 계신데, 이 변화가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어떤 사람은 빠르게 성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실패를 거듭하기도 하죠. 제 인생은 그 중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성실히 살았지만, 욕심이 크지 않았어요. 뚜렷한 한 목표에 집중된 삶도 아니었고요. 경쟁이나 승부욕보다는 그저 ‘오늘을 버텨내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오랜 시간 꾸준히 붙잡고 있던 건 ‘그림’뿐이더군요. 생계를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지만, 마음속 갈증은 늘 그림을 향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갈증이 채워진 느낌이에요. 늦게나마 제 삶에 ‘예술’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Q. 기업에 연결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경제적 안정이 생기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화구를 들이고, 생활 걱정 없이 작품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어요. 재택 근무라 출퇴근 부담도 없고, 하루하루가 훨씬 즐거워졌습니다. 예전에는 ‘일하기 위해 그림을 포기’했다면, 지금은 ‘일을 하며 그림을 지속할 수 있는’ 환경이 생긴 것이죠. 덕분에 잠재워뒀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Q. 창작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마음 한켠에 늘 미술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있습니다. 고갱도 마흔이 넘어서 그림을 시작했다고 하잖아요. 저 역시 ‘죽을 때까지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매일 캔버스 앞에 앉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제 원동력입니다.
Q.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예술을 ‘완성의 세계’가 아닌 ‘실험의 세계’로 봅니다. 아직도 배우고 시도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관객이 제 작품을 어떻게 느낄지는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선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진심을 다해 나의 색을 담아내는 것. 그게 예술가의 기본이자 책임이라 믿습니다.

Q. 갤러리바다 <가을 기획전>에 함께 해주셨는데요, 이번 전시가 특별히 작가님께 더 소중하셨다고요.
네, 맞습니다. 제게 큰 자신감을 준 시간이었습니다. 수채화는 이전에도 판매된 적이 있었지만, 유화 작품이 정식 갤러리에서 판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거든요. 제 그림이 ‘시장에 통한다’는 확신이 생겼고, 나아가 앞으로의 방향이 맞다는 믿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은 스스로를 ‘비즈니스 예술가’라고 표현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예술이 단지 감상의 대상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술도 사회 속에서 ‘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비즈니스 예술가, 혹은 세일즈맨 예술가라고 부릅니다. 예술이 사람과 사회를 잇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될 수 있음을 제 작업과 삶으로 증명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화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로서, 언젠가 지명도 있는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습니다. 그리고 평생의 목표는 나만의 갤러리를 갖는 거예요. 1층은 전시장, 2층은 작업실, 3층은 살림집. 마당이 있고, 햇살이 드는 공간에서 작품과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그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저도 70세가 되어서야 다시 예술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인생을 돌아보니 결국 정답은 내 안에 있더군요. 저는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겁니다. 각자의 길은 다르겠지만, 두려움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방향을 향해 걸어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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