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윤하균] “반항하는 예술가인 것 같아요.” - 위메이드 소속
- 8월 6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6일 전
*본 인터뷰는 아트오브를 통해 위메이드에 취업한 윤하균 작가님과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동양화의 전통적인 재료와 기법으로 괴수와 동물, 신화 속 존재를 그리는 윤하균 작가님은 동물의 털과 깃털, 비늘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에서 출발해 얇은 광목에 연한 먹을 겹겹이 쌓아 올린 괴물연작을 하고 있으며, 닭뼈나 돼지뼈와 같은 동물뼈로 괴물 오브제도 만들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기법이나 소재 면에서 반항하는 예술가’라고 소개하는 윤하균 작가님을 만나, 그녀의 독특한 작품 세계와 기업 소속 예술인으로 일하며 경험한 변화, 그리고 앞으로 만들고 싶은 공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Q. 처음 동양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TV에서 고철로 괴물을 만들고 그 안에 전등을 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 작품이 너무 갖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어린이 미술을 배우고 싶지는 않았고요.
공부도 재미가 없고 잘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서 고등학교 때 “저는 공부를 못 하겠어요”라고 말하고 미술을 하시는 분을 찾아갔어요. 그분이 수채화로 가을 풍경을 그려보라고 하셨는데, 저는 종이를 노란색으로만 가득 채워서 보여드렸어요.
다른 사람들은 가을 나무를 그리는데 가을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며 특이하다고 하셨어요. 미대 입시를 권해주셔서 처음에는 소묘를 배우다가 입시 막바지에 동양화를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3학년 12월부터 시작했으니 늦은 편이었는데도, ’나는 소묘보다 동양화를 더 잘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흑백사진을 보면서 색의 관계를 맞춰 이쪽에도 칠하고 저쪽에도 칠하다 보면 의도한 대로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Q.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한 뒤의 학교생활은 어떠셨나요?
제가 공부로 빡센 일반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공부 잘하는 모범생들 사이에 있다가 미대에 가니까 분위기가 굉장히 편했어요. 공부로 대학에 왔다면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실기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전공 실기 수업을 가장 좋아했어요. 교수님들이 제 그림을 좋아해 주셔서 늘 작업을 많이 해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림을 여러 개 그려서 가장 잘된 작품은 과제전에 내고, 나머지는 “습작이에요”라고 했어요.
그때도 괴물이나 괴수를 그리려고 했어요. 다만 교수님들이 작품을 많이 그려오라고 하셔서 괴수를 무섭게 표현하기 위한 디테일까지 작업할 시간은 부족했어요. 그래도 다른 친구들 그림을 보고, 작가가 된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배우는 경험은 좋았습니다. 그때는 예중·예고출신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었죠.
“저는 풀보다 움직이는 생명체를 그리는 게 더 재미있어요.”
Q. 대학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나요?
졸업할 때 쯤 동양화 실기 수업을 들었는데, 원래는 폭포를 그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작업 과정을 계속 제출해야 해서 시간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클로버를 하나 그려갔더니 교수님이 그걸 100개 그려오라고 하셨는데 58개 정도 그려 간 적이 있어요. 교수님께서 개인전 할 생각 없냐고도 하셨어요.
나중에 선배에게 들었는데, 교수님께서 제 클로버 그림을 보고 “현대판 사군자 같다”고 칭찬하셨대요. 난을 치는 것과 비슷한데 요즘 사람들은 난을 잘 그리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사실 저는 풀을 그리는 것은 조금 재미가 없어요. 풀도 생명이기는 하지만, 동물처럼 움직이는 생명체를 그리는 일이 더 재미있어요.

Q. 동물을 그리던 관심이 괴수로도 이어진 건가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동물화를 많이 그렸어요. 동물의 털이나 깃털, 비늘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서 동물화를 시작했거든요. 해부학적 구조도 익힐 겸 인물과 동물을 함께 그렸고요.
그 뒤로는 괴수를 그리겠다고 계속 노력했어요. 저는 괴수가 더 무섭게 생겼으면 좋겠어요.
Q. 동물의 뼈를 이용한 입체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학교에 다닐 때 닭뼈를 말려 전갈을 만들었어요. 닭의 목과 몸이 이어지는 부분이 튼튼하거든요. 그 부분을 활용해 괴물의 등뼈를 만들고, 몸은 골반뼈와 가슴뼈로 작업했어요.
뼈에 옻칠하는 작업도 해봤어요. 돼지 머리뼈를 성형해서 악마를 만들어 받침대에 올려놓은 겁니다. 돼지 등뼈도 구해놨는데, 아직 어디에 사용할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아마 괴수 작업에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하균, 지옥문 No.1, 2025, 돼지뼈와 나무에 옻칠, 32*15*30cm 작가노트: 돼지 머리뼈를 성형해 악마 형상을 만들어 옻칠로 마감하고, 나무 받침대에는 악마로부터 짓눌린 사람들을 재현했다. 특이하게도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악마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런 조형물을 부적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괴담과 신화와 괴수 논문을 읽으며 괴수를 구상해요.”
Q. 괴수를 구상할 때는 어떤 자료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괴담이나 신화나 괴수논문과 학술지를 읽어요. 괴수를 구상하면서 북유럽 신화도 많이 읽었어요. 전사 같은 이미지의 괴물을 그리고 싶었거든요.
졸업전시를 준비할 때 괴수 작업이 너무 힘들어서 다른 작업을 해볼까 하고 논문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찾아보니 관련 자료가 생각보다 많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이 작업을 계속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북유럽 신화의 최고신 오딘이 어린 나이라 턱수염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었어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기처럼 둥글둥글하고 공중에 떠다니는 듯한 반인반수 괴수를 구상해보기도 했어요.
바비인형도 참고했어요. 사람의 신체 구조와 비슷하면서도 비율이 조금 뒤틀려 있으니까요.

Q. 작가님은 스스로 어떤 예술가라고 생각하시나요?
기법이나 소재 면에서 반항하는 예술가인 것 같아요.
먹으로 작업하다 보니 동양화 기법이 자연스럽게 나오기는 하지만, 소재는 교훈적인 것보다는 괴수나 동물 위주로 그려요. 예전 기법대로만 그리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방식이 싫어서 서양화처럼 그림자도 넣고, 밝은 부분은 밝게 표현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고질라나 피카츄 같은 괴수를 좋아했어요. 괴수가 나오는 영화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영화라도 괴수가 잘 표현되어 있으면 보는 편이에요.
“예술 작업과 직업으로서의 일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Q. 예술 작업을 하는 것과 직업으로서 일하는 것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레지던시에 처음 입주했을 때도 일정이 많아서 작업과 조율하느라 몸도 마음도 힘들었어요. 여러 변수가 생기기도 하고요.
직업으로서의 일은 매일 해야 하다 보니 힘들 때도 있어요. 혼자 작업하는 것과 정해진 일정에 맞춰 계속 일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Q. 기업 소속 예술근로자라는 일자리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대학 때 마지막으로 수업을 들었던 교수님께 연락을 받았어요. 선배 중 한 분이 장애인 고용 형태로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는데, 함께 일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계속 작업하고 있는 예술인이 있으면 소개해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해요. 그렇게 기업 소속 예술근로자라는 일자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Q. 기업에 소속되어 일정한 소득을 얻는 것이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아직은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료비에 대한 걱정을 덜게 됐어요. 다른 작가님들을 알게 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근무 시간(낮 시간)에 맞춰 작업하기는 하지만 제가 원래 저녁형 인간이라 중요한 작업들은 집중이 잘되는 어두운 밤에 많이 하곤 합니다.
몸이 허약해서 무기력할 때가 있는데, 일을 하려면 규칙적으로 일어나 작업해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요.
“미완성 작품을 과정으로 제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Q. 현재 일하면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제가 작업 속도가 느려서 미완성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완성작만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 과정이나 미완성작도 제출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작업하다 만 작품들을 방학 때마다 몰아서 마감했어요. 지금은 새로운 작품이 잘되지 않을 때 예전에 작업했던 작품을(저는 이것들을 불초자식이라고 불러요) 꺼내 고치고,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고 있어요.
Q.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일자리’는 어떤 곳인가요?
핀휠/아트오브는 작업하는 사람에게 좋은 방향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주셔서 좋았어요.
작품이 완성되지 않아도 작업 과정이나 미완성작을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고요. 재택근무인 것도 좋아요. 저처럼 외출이 어려운 사람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작가님 중에도 출근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작품 실물을 매번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아요. 작가에게 그림을 빨리 그려 판매하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작품의 소유권을 작가가 계속 가질 수 있게 해주니까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누구나 부담 없이 머무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Q. 앞으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입체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인형 만들기 키트도 사두었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해보지는 못했어요.
동물 옷에 솜을 채워 인형을 만들려고 재료도 사놨어요. 거기에 무서운 눈을 달고 싶어요. 넷플릭스에서 본 콘텐츠에 보통보다 눈이 네 배쯤 큰 인형들이 나왔는데, 특이하면서도 지나치게 못생기지는 않아 보였어요.
그런 눈을 구해서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국내에서는 재료를 찾기 어렵더라고요. 직접 만들어보려고 전분으로 작업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잠시 중단한 상태예요.
Q. 늘 함께 다니는 늑대 인형 ’늑대군’도 소개해 주세요.
원래 전시나 공예 작업에 사용할 수 있는, 박제처럼 생긴 천 인형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시용 인형은 생각보다 못생기고 비싸더라고요.
그러다 주변을 구경하다가 다이소에서 이 인형을 만났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인형보다 예쁜 늑대 인형이 나오기 힘들 것 같아 데려왔어요. 이름은 ’늑대군’이에요.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잡아먹는 늑대라는 뜻이에요.
늑대군을 가지고 대학로에 가서 앉아 있으면 강아지들이 친구인 줄 알고 찾아와요. 강아지들은 반가워하는데 보호자분들은 갑자기 강아지가 저에게 다가오니 당황하시기도 해요.

Q. 작품 활동 외에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일반적인 전시장보다는 도서관처럼 사람들이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요.
누군가가 와서 편하게 쉬어갈 수도 있고, 미술 자료를 찾아볼 수도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종이에 괴수 낙관을 직접 찍어갈 수 있는 체험도 해보고 싶어요.
학교에 다닐 때 전각 수업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림에 찍을 작은 낙관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배우지 않았어요. 그런데 졸업한 뒤 아크릴 스탬프 패드에 낙관을 반복해서 찍어 만든 전시를 봤어요.
그걸 보고 “도장 파는 것을 배워둘 걸”이라고 생각했어요. 낙관을 꼭 그림 한쪽에 작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큰 도장을 만들어 하나씩 찍어봤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언젠가 제가 꿈꾸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괴수 낙관을 하나씩 찍어가고, 그림과 미술 자료를 보며 편하게 머물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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